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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보유자
성명 김형조 대표곡 다운로드
생년월일 1952.01.13
지정일자 2003.04.25

김형조는 1952년 1월 정선군 동면 건천리에서 태어나 7세가 되던 해에 정선읍 광하리로 이사를 와 서른 살이 되던 해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이후 건설부 국토유지관리사무소에 취직하여 10여년을 근무하였고, 1986년 정선군청에 들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마을 어른들의 아라리를 들으면서 성장을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미 고인이 된 최성규의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최성규 노인의 정선아리랑은 어려서부터 들어오던 아리랑과는 달리 늘어지면서 애절함이 더했다.
그러한 창법을 흉내 내고 귀익어가면서 느리고 처지는 듯한 정선아리랑에 영향을 받았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창법을 배워가면서 토속적인 모습의 아라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1980년 제5회 정선아리랑경창대회에 출전했으나 입상하지 못했다.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소리를 구성진 가랑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김병하와 유영란의 소리를 사사하며 소리의 기틀을 다져갔다.
마침내 그는 1983년 제8회 정선아리랑제 행사로 열린 정선아리랑 경창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4년 문화공보부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 전국민요경창대회에 나가 김병하,
김길자 등과 함께 정선아리랑을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다. 정선아리랑 명창 김형조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정선을 찾아오는 관광객, 대학생들에게 정선아리랑을 알렸고, 정선아리랑제 등의 행사에 참여해 자기만의 늘어지는 듯한 독특한 창법으로 소리를 했다.
정선군청에 운전기사로 취직한 직후부터는 몸과 소리가 자유스럽지 못했다. 일찍이 빛을 본데 비해 기능보유자가 된 것은 2003년이었다. 그때까지의 세월이 쉽게 부르는 듯 여겨지는 그의 소리를 공력이 깃든 소리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현재 정선 읍내에서 멀지 않은 봉양 7리 마을에서 살고 있다. 김형조의 소리는 [정선아리랑]카세트테이프(1986 정선아리랑제위원회/아세아레코드), [정선아리랑]CD(2004 정선군/새샘음반)등에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정선군 정선아리랑 전승실태 조사보고서>?